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세 리잘 (문단 편집) == 혁명 활동과 최후 == [[파일:Rizal2_Gallery.jpg|width=400]] 추방 이후 리잘은 본격적인 혁명 및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리잘은 스페인 정부에 식민 통치의 민주적 개혁을 요구함과 동시에 필리핀인들과 함께 자치 운동을 벌였으며, 리잘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였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무장 독립 투쟁 운동과는 다르게 평화주의적 독립 운동을 추구하였다. 리잘은 1892년부터 필리핀 독립 운동의 지도 기관인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해 독립 운동을 지휘하였고, 그의 활동을 주목하던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1896년 10월 6일 쿠바로 가던 중 스페인에서 체포되어 민다나오 섬 다피탄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리잘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진료소를 만들어 무료로 주민들을 치료해주거나 현지 청소년들에게 기본적인 소양과 애족과 애민사상을 교육시키는 교육자이자 농장을 경영하여 농작물을 판매하는 등 농업인 겸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심지어 벽돌을 만드는 나무틀과 술파칸 (Sulpakan)이라는 [[시가(담배)|시가]] 전용 [[라이터]]를 발명하여 발명가의 기질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후 스페인 정부는 무장 독립 투쟁의 배후라는 누명을 씌워 리잘을 체포하였고, 마닐라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는 변호사 없이 스스로를 변호했으나 끝내 누명을 쓰게 된다. 그 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내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감옥으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군법에 의해 반역, 선동, 그리고 내란음모 혐의로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리잘의 처형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평화적 혁명 운동을 지지하거나 그에게 감화했던 스페인과 필리핀 식민지 병사들의 탄원이 이어졌지만, 결국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896년 12월 30일 마닐라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해 숨졌다. 리잘은 죽기 전에 자신을 쏘려던 스페인군 소속 필리핀인들에게 뒤돌아서 등에 총을 맞고 쓰러졌으며,[* 경위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가지인데, 자신을 쏘는 병사들에게 “너희도 피해자일 뿐이니 죄책감 가지지 말라”는 뜻으로 그랬다는 추측도 있고, 공개처형 당시 대중을 바라보고 죽음으로서 민족적 고취를 하려 했다는 해석도 많다. 지금은 후자가 더 지배적이지만 호세 리잘은 죽기 직전 그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기에 사람 심정을 산 사람은 알기가 어려우니(...)] 그래서 필리핀에 세워진 그의 최후를 재현한 동상도 등에 총을 맞은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하지만 리잘은 등에 총을 맞고도 죽지 않아 형을 집행하던 스페인 장교가 [[확인사살]]을 했고, '''[[미스터리 관련 정보/역사 관련 정보/세계사|사후 호세 리잘의 시체는 스페인 식민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져 현재까지 찾지 못한 상태다.]]''' 리잘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의 가슴에 독립 의지를 불지르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그의 영향을 받은 [[에밀리오 아기날도]],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등 많은 청년들이 필리핀의 독립 투쟁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리잘의 미망인 조세핀 역시 무장조직인 [[KKK|카티푸난]]에 들어가 참전한다. 그 결과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비록 당시에는 [[미서전쟁]] 이후 [[미국령 필리핀|필리핀을 할양받은 미국이 개입해 독립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필리핀인들에 의해 [[국부|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리잘이 죽고 나서 [[어머니]]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어머니를 따라온 [[하녀]]에게 건네준 등잔의 밑바닥에서 그가 숨겨놓은 듯한 편지가 발견된다. 이른바 '마지막 인사(Mi último adiós, My Last Farewell[* 알 수 없는 이유로 원고에는 서명도 없고 제목도 없어 본인이 지은 제목은 알 수 없으나, 이 시는 보통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라는 절명시인데, 필리핀에서는 아주 유명한 시다. > Adiós, Patria adorada, región del sol querida, >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나라여, > Perla del mar de oriente, nuestro perdido Edén! > 동방의 진주여, 잃어버린 에덴이여! > A darte voy alegre la triste mustia vida, >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너를 위해 바치리니 > Y fuera más brillante, más fresca, más florida, > 이제 내 생명이 더 밝아지고 새로워지리니 > También por ti la diera, la diera por tu bien. > 나의 생명 마지막 순간까지 너 위해 즐겁게 바치리 그가 사망한 후 베를린 학회에서는 그를 추모하였고, 추도사에서 [[루돌프 피르호]]는 위의 시를 [[독일어]]로 낭독하였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도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